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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

by tree_s 2022. 3. 31.

 

"Deliver my soul from the sword; my darling from the power of the dog"

- Psalms 22 : 22

필은 숨어 산다.

거칠고 딱딱한 껍질 속에 숨어 산다.

그가 무겁고 거추장 스러운 껍데기에서 나와

맨 몸으로 쉬는 건,

목장 외곽의 얕은 강가에서 뿐이다.

거기서 필은 알몸이 되어

물에 안기고, 햇빛을 껴안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브롱코 헨리를 추억한다.

거친 서부 남자의 외피를 두르고 있을 때 필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는 거칠고 마초적이고, 잔혹하다.

강인한 서부남자의 표본과 같다.

자신에 대한 세상의 증오를 연료삼아

힘겹게 역설의 페르소나를 쌓아올렸다.

그리고 시간의 풍화작용 속에서

가면은 어느 새 그의 본 모습이 되어 버렸다.

온 몸이 먼지와 땀으로 찌들어도 씻기를 꺼리는 건

이와 연관된 것인지 모른다.

그의 동생(조지)은 서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터프한 인부들은 멀끔한 차림으로

목장을 주변을 겉도는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

카리스마 있는 형(필)의 곁에 있을 때

조지는 더 작고 유약해 보인다.

필은 그런 동생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실은 필 자신이 조지처럼,

아니 그 이상의 섬세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필은

저녁식사도 미룬 채 악기를 연주하며 쉰 다.

대륙의 반대편에 위치한 예일대에서

그가 전공한 것은 고전문학이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었던 브롱코 헨리의 죽음 후,

필이 뿌리깊은 외로움을 내려놓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안식할 수 있는 건

조지와 함께 있을 때 뿐이었다.

중년이 넘은 형제가 한 방에서 트윈침대로 생활하는 건

아마 필의 의지였을 것이다.

조지는 아마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형이 내밀한 본 모습을 감추기 위한 가면을 쓰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세상은 형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

자신과 있을 때 형이 작은 안식을 얻고 있다는 것.

조지가 중년이 되기까지 결혼하지 않고

힘겹게 목장 생활을 이어간 건

형을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조지는 지쳐가고 있다.

강인한 형이 그림자가 되어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늘 혼자라고 느껴왔다.

그런 동생이, 식당을 운영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로즈와 사랑에 빠졌을 때 필은 분노한다.

동생과 결혼식을 올린 로즈에게

'꽃뱀같은 년'이라고 쏘아 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후 로즈의 삶은 지옥이 된다.

그리고, 이미 필에게 큰 상처를 입었던 로즈의 아들(피터)은

그렇게 망가져 가는 엄마를 보며 계획을 세운다.

사랑하는 엄마를 사나운 개로부터 구해낼 계획!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피터의 계획은

뜻밖에 순풍을 타게 된다.

필이 혼자 목욕하는 걸 우연히 보게된 피터는

위협적인 욕설을 들으며 도망쳤지만

모든 사건은 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촉매제로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피터가 목장 인부들로부터

'게이' 같다며 놀림을 받을 때

필은 슬며시 화해의 손을 내민다.

그 모든 일 또한 실은 필의 '의지'였을 것이다.

필은 간절히 '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필에게 있어 피터는, 브롱코 헨리를 추억할 수 있는

작은 씨앗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둘 사이에 유대가 싹트자

로즈는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 된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희망인 아들조차

필이 빼앗아 갈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때 피터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탄저병에 걸린 소를 찾아 들판을 헤매고 있었다.

길을 떠나기 전 피터는 사람 손의 혈관과 피부조직을 해부한

의학서적을 뒤지며 은밀한 계획을 준비했다.

마침내 계획은 성공한다.

로즈는 행복한 목장의 안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모자(母子)를 위협하며 으르렁대던 필은 사라졌다.

자신을 증오하는 '개'의 무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한 마리 거친 야수가 되어버린 필은,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그런 필이, 마지막 순간 애타게 사람은 다름 아닌 피터였다.

필의 손에는 피터에게 전해 줄 밧줄이 들려 있었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날카로운 개의 이빨과도 같은 밧줄을 손에 든 채,

필은 피터와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했다.

실은 피터의 친부(親父) 목숨을 앗아간 것 또한 '밧줄'이었다.

필은 피터에게 밧줄쓰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피터는 이미 밧줄을 이용해 엄마를 구해낼 계획을 세웠고, 이뤄냈다.

피터의 친부는 의사였지만, 알콜중독자였다.

이것이 피터가 엄마를 구해 낸 첫 번째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피터는 다친 토끼를 쓰다듬다 아무렇지 않게 도륙할 수 있는

차갑고 냉혹한 면모을 지니고 있다.

그의 가녀린 외모와 여성적 취향은

이를 가려 보이지 않게 한다.

피터의 친부는 그를 쌀쌀맞고 독한 아이라고 했다.

그러나 필은 진실을 보지 못했다.

필의 말처럼, '못 보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 셈이다.

정혜신 박사가 쓴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행패를 부리던

'태극기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정혜신 박사는 할아버지에게 매섭게 따져묻는 대신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물꼬가 되어 할아버지는

지금의 자신에 이르게 된 삶의 행로들을 이야기했고

넌지시 사과의 말까지 꺼낸다.

그 할아버지 역시 자신을 벼랑끝으로 내몬 '세상'이라는 위협 앞에,

그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애써왔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 생때같은 자녀를 잃고 거리로 나온 부모들에게

욕설과 행패 부르기를 서슴지 않던 태극기 할아버지들은

그저 사나운 이리 떼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서로의 상처와 두려움을 휘감고 으르렁대는

각양의 군중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공간이다.

필은 산 등성이에 숨어 입을 벌리고 있는 개를

홀로 알아보고 응시하던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또 하나의 역설이다.

하지만, '못 보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는 필의 말은

그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그 시대를 살아간 필에게는

허울 좋은 수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필이 아직 살아 있다면,

어느새 차갑고 잔인한 사람이 되어버린 필에게

말해주고 싶다.

시선을 돌리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 있다고,

너는 지금의 이 모습 이대로 아름답고 강하다고.

딱딱한 껍질에서 나와 가면을 벗어도 좋다고.

브롱코 헨리가 그랬던 것처럼,

너의 모습 그대로를 안아주고 사랑해주라고.

---------- <숨은그림 찾기_입을 벌린 개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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