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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6

드라이브 마이 카 _ 단상들 ○ 가후쿠의 가정은 언뜻 화목해 보인다. 화목의 외피 안에는 격랑이 일고 있다. 그것은 아내의 불륜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불행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죽은 딸의 기일, 아내(오토)는 괴로움에 몸을 떨며 겨우 버텨내는 모습이다. 가후쿠는 평온해 보인다. 오토처럼 괴롭지 않아서는 아니다. 가후쿠는 모범적인 가장인가? 아니 그는 행복한가? 나는 ‘어떠해야 하는가’가 아닌, ‘나는 어떠한가’라는 질문. 이 질문은 영화를 관통한다. ○ 녹내장. 점차 시야가 좁아지는 병. 가후쿠가 볼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녹내장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실명 직전인 경우가 많다. 그는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덕분에 자신의 병을 알게 된다. 오토의 죽음은, 어떤 면에선 자동차 사고와 닮아 있다. ○ 오토는 섹스를 통해.. 2022. 4. 22.
나는 실패한 것인가 (Searching for Sugar Man) 최선을 다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할 때가 있다. 애정이 있는 지인들은 수고했다고, 잘 해냈다고,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라고 위로하지만 그마저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떨쳐버리려 할 수록 '나는 정말 실패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메아리치기 때문이다. 기대 없이 본 이 영화가 나의 오랜 질문에 답해 주었다. 생계를 위해 건설현장 작부로 일하며 음악활동을 하던 로드리게스는 우연찮게 '콜드 팩트'라는 앨범을 발매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되어가는 것 같았고, 리뷰도 좋았지만 앨범은 실패했다. 음반사 사장, 사장 부인, 사장 딸, 프로듀서 ... 등 총 6장이 팔렸다. 운좋게 2집을 낼 기회가 생겼지만 2집은 1집보다도 성과가 좋지 않았다. 로드리게스는 음반사로부터 계약 해지되었고 다시 원래의.. 2022. 3. 31.
옥자(okja) 400억자리 기차영화를 찍었던 봉준호는 600억 짜리 동물영화로 돌아왔다. 봉준호의 작은 영화를 기다려왔던 나로서는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외모와 다른 그의 아기자기한 매력은 블로버스터형 대작이 아닌 작은 영화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 하나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제작비는 커졌지만 주제와 소재는 작아졌다는 점이다. 어떤 평론가가 한줄평에서 ‘괴물의 경량화, 세계화’라고 썼던데 그 표현이 정확해 보인다. 미자에게 옥자가 ‘식구’로 자리매김 한 건 함께 보낸 10년의 시간과 그 안에서 싹튼 둘만의 내밀한 교감에 있다. 할아버지를 빼면 미자와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옥자 뿐이었다. ​미자는 옥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을 읽었다. 변을 보려는 것인지 놀고 싶은 것인지, 토라진 것인지, 그런 시늉.. 2022. 3. 31.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난 건 사랑이었을까? 어떤 관객들은 그리 믿었겠지만 오히려 샬롯과 밥은 더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매말라 부서러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삶 속에 있다. 샬롯은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하고, 특별한 재능없이 평범한 존재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보며 겁내고 있다. 중년의 밥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회의와 절망으로 침잠하고 있다. 그 위태로운 인생의 모퉁이를 돌며 둘은 우연히(?) 만난다. 첫 만남은 오해였다. 밥은 샬롯이 자기를 보고 환히 웃었던 걸 기억하지만 샬롯은 밥을 기억하지 못한다. 운명적인 사랑이라거나 극적인 만남이라는 생각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기혼자인 두 사람은 이미 그런 환상에 사로잡힐 나이는 아니다. 오히려 출발선을 지난 레.. 2022.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