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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옥자(okja)

by tree_s 2022. 3. 31.

 

400억자리 기차영화를 찍었던 봉준호는 600억 짜리 동물영화로 돌아왔다. 봉준호의 작은 영화를 기다려왔던 나로서는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외모와 다른 그의 아기자기한 매력은 블로버스터형 대작이 아닌 작은 영화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나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제작비는 커졌지만 주제와 소재는 작아졌다는 점이다. 어떤 평론가가 한줄평에서 ‘괴물의 경량화, 세계화’라고 썼던데 그 표현이 정확해 보인다.

미자에게 옥자가 ‘식구’로 자리매김 한 건 함께 보낸 10년의 시간과 그 안에서 싹튼 둘만의 내밀한 교감에 있다. 할아버지를 빼면 미자와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옥자 뿐이었다.

​미자는 옥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을 읽었다. 변을 보려는 것인지 놀고 싶은 것인지, 토라진 것인지, 그런 시늉만 하는 것인지.​ 

벼랑에서 떨어질뻔한 미자를 구한 옥자는 잠시 후 뾰루퉁한 표정으로 미자를 맞지만 이내 둘은 꼭 끌어안는다. 그리고 미자는 고마움과 사랑을 담아 옥자에게 귀엣말을 속삭인다.

대형 사육장에선 사육사가 개별 가축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이름으로 부르는 걸 금기시 한다. 미자 할아버지의 말처럼, 인간이 정한 그들의 운명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미자는 금기의 끝단에 서 있다. ​산골소녀 미자와 교감하는 건, 옥자 뿐이었다는 것이 영화의 비극이자 사건의 발단이다.​

미자는 케이의 통역을 통해 ALF 단원들과 이야기하지만 대화는 오해와 혼돈 투성이다. 미자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기보다 그들 자신의 신념과 계획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미자의 출국장에 서 있던 '관료'스러움 넘치는 아저씨들은 피켓을 들고 보도(소통)을 위한 사진을 찍지만 거꾸로 든 사실도 모를 만큼 교감의 능력도, 그에 대한 관심도 없다. 

ALF의 리더인 제이는, 영어와 한국어를 병기한 종이를 들고 미자와 소통을 시도하지만, 거꾸로 들고 있던 종이를 고쳐들어야 했고, 번역문 또한 조금씩 말의 주변을 겉돌았다. 미안한 마음과 약속을 담 ‘we love you’는 언뜻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너를 사랑해'로 번역될 뿐이었다.

​미자는 옥자를 찾아 서울에갔지만 유리문 안의 직원과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미란도 직원)은 ALF가 블랙초크에 잡히는 모습을 보며 유리문 안에서 조용히 차를 마신다. 기계처럼 옥자를 죽여 대량 유통시키는 이들은 유리문 안에 선 이들이다.

​미자는 뉴욕의 행사장에서 옥자를 만나지만 옥자는 정신이 거반 나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 패닉에 빠져 있는 옥자를 진정시킨 건 다시 미자의 귀엣말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온 뒤, 미자는 조금 변한다. 더 이상 옥자의 배 위에서 낮잠을 자지 않는다. 새 식구가 된 새끼 돼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불러주지도 않는다. 새끼 돼지가 재롱을 부려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

옥자는 그런 미자를 불러세워 귀엣말을 전한다. 옥자가 한 말이 무엇이었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것은 미자를 위로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던, 어느새 마음의 문을 반쯤 닫아버린 미자에게, 고맙다고,괜찮다고, 너와 함께 있어 좋다고... 말했을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진심이 담긴 귀엣말, 그 말을 조용히 듣는 것. 감독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말도아마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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