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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Story50

옥자(okja) 400억자리 기차영화를 찍었던 봉준호는 600억 짜리 동물영화로 돌아왔다. 봉준호의 작은 영화를 기다려왔던 나로서는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외모와 다른 그의 아기자기한 매력은 블로버스터형 대작이 아닌 작은 영화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 하나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제작비는 커졌지만 주제와 소재는 작아졌다는 점이다. 어떤 평론가가 한줄평에서 ‘괴물의 경량화, 세계화’라고 썼던데 그 표현이 정확해 보인다. 미자에게 옥자가 ‘식구’로 자리매김 한 건 함께 보낸 10년의 시간과 그 안에서 싹튼 둘만의 내밀한 교감에 있다. 할아버지를 빼면 미자와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옥자 뿐이었다. ​미자는 옥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을 읽었다. 변을 보려는 것인지 놀고 싶은 것인지, 토라진 것인지, 그런 시늉.. 2022. 3. 31.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난 건 사랑이었을까? 어떤 관객들은 그리 믿었겠지만 오히려 샬롯과 밥은 더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매말라 부서러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삶 속에 있다. 샬롯은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하고, 특별한 재능없이 평범한 존재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보며 겁내고 있다. 중년의 밥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회의와 절망으로 침잠하고 있다. 그 위태로운 인생의 모퉁이를 돌며 둘은 우연히(?) 만난다. 첫 만남은 오해였다. 밥은 샬롯이 자기를 보고 환히 웃었던 걸 기억하지만 샬롯은 밥을 기억하지 못한다. 운명적인 사랑이라거나 극적인 만남이라는 생각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기혼자인 두 사람은 이미 그런 환상에 사로잡힐 나이는 아니다. 오히려 출발선을 지난 레.. 2022. 3. 31.
스타 이즈 본 가슴 아픈 영화를 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능숙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 가수이자 알콜 중독자인 잭은 죽어가고 있다. 그의 죽음은 아주 긴 자살과도 같아서 다른 이들이 쉬이 알아 채기 어렵다. 잭과 같은 유형의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열렬히 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때론 누군가 자신의 지옥을 끝내주길 고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다룰 수도 없는 불안을 품고 사는 것 같았다. 뜨거운 석탄을 꿀꺽 삼킨 채 길을 걷고 있는 사람처럼. 잭은 이명을 듣는다. 다른 이들은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소리. 술과 마약 없이는 그것을 견뎌 낼 수 없었다.​주변에선 보청기를 끼라고 권했다. 그러나 잭에게 있어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노래 뿐이었.. 2022. 3. 31.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 "Deliver my soul from the sword; my darling from the power of the dog" - Psalms 22 : 22 ​ 필은 숨어 산다. 거칠고 딱딱한 껍질 속에 숨어 산다. 그가 무겁고 거추장 스러운 껍데기에서 나와 맨 몸으로 쉬는 건, 목장 외곽의 얕은 강가에서 뿐이다. 거기서 필은 알몸이 되어 물에 안기고, 햇빛을 껴안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브롱코 헨리를 추억한다. ​ 거친 서부 남자의 외피를 두르고 있을 때 필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는 거칠고 마초적이고, 잔혹하다. 강인한 서부남자의 표본과 같다. 자신에 대한 세상의 증오를 연료삼아 힘겹게 역설의 페르소나를 쌓아올렸다. 그리고 시간의 풍화작용 속에서 가면은 어느 새 그의 본 모습이 되어 버렸다. 온 .. 2022.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