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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tree_s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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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YES24

‘방송계의 퓰리처상’ 피버디상 수상자 룰루 밀러의사랑과 혼돈, 과학적 집착에 관한 경이롭고도 충격적인 데뷔작!‘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수상한 과학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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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미있는 존재인가? 이 책은 이 오래된 질문을 탐구한다. 과학자의 딸로 자란, 빼어난 글솜씨의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을 탐구함으로써 그 답을 찾기 시작한다.

저자가 ‘모델’로 삼은 데이비드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업적 내지 기념비적 성취의 표본과 같은 사람이다.

세상이 놀랄만한 업적을 이룬 그의 삶은 의미로 충일했을까? 자신을 쉬지 않고 흔들어대는 시련 앞에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기념비적 업적을 일궈낸 그는 삶의 비밀을 풀어줄 만한 인물인가? 저자의 탐구는 끝내 해피엔딩을 선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정해진 수순이었을 지 모른다.

해피엔딩이었다면 이 책은 누군가에 대한 싸구려 ‘전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공들여 쌓아올린 서사의 성공은, 저자가 모델로 삼은 데이비드의 삶이 철저하게 무너져내린 후의 과정들, 저자가 설정한 가설이 깨어져 나간 이후의 여정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논문이 아니며, 저자가 이러한 새드앤딩을 예상하고 ‘데이비드’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엉성함과 예상밖의 전개가 오히려 저자의 절박함과 진정성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특이성으로 인해 이 책은 장르를 명확히 정의내리기 어려운 미묘한 기운을 품게 된다. 저자의 빼어난 글솜씨와 다양한 과학적 소재들이 가세하면서 이런 특성은 더 강화된다.

어릴 적 과학자인 아버지로부터, 인간은 그리고 너는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 저자는 마음에 큰 구멍을 지닌 채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그 구멍은 성인이 되어서도 좀처럼 메꿔지지 않았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 저자는, 온 힘을 다해 문제에 부딪혀보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데이비드’에 대한 탐구의 여정을 통한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어류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기념비적 인물이다. 그러나 학창시절의 데이비드는 몸시 여리고 소심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저자처럼. 데이비드는 온갖 이름 없는 식물들에 이름을 붙여주길 좋아하는 고운 마움을 지닌 사람이었고, 자신을 덮쳐오는 갖은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온 업적들이 산산조각난 순간에도 대장부처럼 의연히 대처할 줄 알았다. 이런 데이비드를 존재하게 한 힘  의 근원. 그 힘의 뿌리에 저자는 희망을 걸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 저자는, 데이비드가 자신과 달리 절망 속에서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을 탐구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저자가 희망을 걸어봤던 데이비드는 ‘우생학’에 빠져 많은 이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린 엉터리 과학자였음이 서서히 밝혀진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스탠포드 대학의 설립자(제인 스탠포드)에 대한 독살도 서슴지 않았던(것으로 묘사되는) 일그러진 악마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책의 이야기는 우생학과 관련된 내용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저자는 국가의 우생학 정책으로 삶을 파괴당한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희망을 걸었던 '데이비드'라는 기대가 산산히 조각난 후, 데이비드가 남긴 괴물, '우생학'이라는 그릇된 관념이 파괴된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선다. 놀랍게도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사랑을 잃지 않았다. 아니, 보다 숭고한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가치를 빛내며 살고 있었다. 인간을 고귀하게 하는 것, 불멸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나 체계가 아닌, 시련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고 아껴주는 '관계', 그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작은 '그물망'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스스로 양성애자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던 저자는, 책의 말미에 7살 어린 동성의 연인을 만난 이야기를 고백한다. 저자가 만난 연인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타입이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강요해왔던 관념과 규칙들마저 깨트리며 책은 끝을 맺는다. 여기까지가 개략적인 줄거리다.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과학책인가? 에세이인가? 철학책인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과학자 아버지를 둔, 글솜씨 좋은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좋게 말하면, 과학 책을 읽는 듯한 흥미로움과 추리소설 같은 긴장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과 친근함을 갖춘 고색창연한 이야기지만, 나쁘게 말하면 과학을 소재로 한 엉성하고 진부한 개인 서사처럼도 보인다. 앞서 말했든 나는 후자에 가까웠지만, 이는 저자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처절한 삶의 고민에 맞서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어떤 면에선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힘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낯선 곳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이야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걸 에세이에 적용한다면 ‘익숙한 답에 다다르기 위한 낯선 과정’정도가 될 것이다. 이 측면에서 보자면 좋은 형식을 갖춘 책이기는 하나만, 저자가 집착하던 데이비드가 자신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이후의 전개는 꽤나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데이비드가 저질렀을 것으로 보이는 여러가지 악행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다분히 과도한 억측(소송 등을 대비해 본인도 신경쓴 듯 보이는)이 느껴지고, 데이비드가 우생학을 신봉하게 된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 또한 무척이나 자의적이다(그의 저서 등을 바탕으로 심리분석/해부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거니와, 저자가 해당 분야에서 그만큼의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데이비드에 대한 기대가 깨진 이후의 내용에서는,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가 보인 만큼의 진지한 고찰도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당시 데이비드를 위시하여 과학계 전반에 그러한 사조가 퍼진 이유 내지 시대적 한계 등에 대한 분석 내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고 전반적으로는 그의 삶을 평면적으로 조망하는 느낌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책의 2/3 정도가 지나 시점에 주제가 급격히 ‘우생학’의 비과학성과 폐혜로 전환되고,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어색하게 의미를 짜내는 내용들(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학설을 제시하며, 우생학을 주장한 데이비드의 업적들은 이미 그 전제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 버림받은 남자친구에게 돌아가기만을 꿈꾸고 있었으나 뜻밖의 연인을 만나 생각지 못한 행복을 맞이하게 된 이야기 등…)로 급히 마무리한 느낌이 짙다.

정리하자면, 뭔가 진정성 있는 날것의 절박함(에너지)를 자양분으로 고전적 질문을 향해 도전해 나가고, 나름 목적지에 발을 딛게 되지만, 그 여정은 투박하고 작위적이라고 할까? 이 책을 원서로 읽었다면 유려한 글솜씨와 속도감, 역사 속 유명인(미국인들에게는)의 숨겨진 이면을 알게되는 데서 오는 짜릿함 등이 모든 단점을 앞도했을 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실에 비춰본다면, 이국 독자로서 오롯이 이해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더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이 책이 탐구하는 주제의 현재성일 것이다. 인간의 삶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 '의미 있는 존재로 남고 싶다'는 절박함에 답하는 과정과도 같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얻게 되는 답은 사실 유사한 거짓말(?) 들이다. 성공을 통해 너의 가치를 증명하라! 니가 이룬 것들이 바로 너다. 너의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이상 너의 가치는 확인되지 않는다... 와 같은.

그 익숙한 체계 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 또한 이런진부한(?) 가정을 전제로 탐구를 시작했다. 이 여정에서 얼마 만큼 새롭운 답을 얻어내느냐, 정답을 얻기 위해 얼마남큼 도전적인 길을 경유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일 것이나, 출발은 진부했고 결론은 난데없는 모양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의 ‘집요함과 끈기’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그녀를 여정에 들게한 이야기에서 진정성이 넘친다. 일단 저자가 망망대해를 향해 출발하는 모습을 보게된 후에는, 누구나 저자 항해가 성공하기만을 바라는 팬의 심정을 지내게 된다. 이런 정도의 집념과 의지를 가진 작가라면 아마, 이후 다른 책에서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저자가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후 동성 연인을 만나 사랑하게 된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먼저 동거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 사람 없이 행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오랜 고민 끝에 프로포즈하는 것에 큰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관계는 어차피 시들고, 마음을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내가 상대방을 정말 사랑했고 그래서 내 의지로 선택한 사람이라는 자각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야만 서로에게 책임감 있는 배우자가 될 수 있고, 그것이 행복한 커플의 비결일 것이다.

ps. 책의 후반부 저자에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가설을 알려준 ‘캐롤 계속 윤’이란 과학자가 언급된다. 당근 한국계일 것 같아 검색을 해 보니, 이 사람에 관한 정보도, 학설도 정보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학계에서 얼마나 공신력 있게 인정받는 학설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말. 이 책에 큰 점수를 주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부분에 있다. 작가가 가장 경계하고 피해야 할 요소 중 하나는 ‘글’을 '글'로만들기 위한 무리수다. 이 책에는 그런 '무리수'의 흔적들이 설핏 엿보인다. 미국에서는 2020년 올해의 책으로도 꼽혔다고 들었다. 그만큼 당시 미국 독자들의 어떤 대중 정서를 관통한 공감대가 있었을텐데 2022년 현재,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독자로서는 그 부분 핵심을 알 도리가 없다.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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