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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

by tree_s 2022. 9. 9.
결혼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일은, 연인 간에 사랑을 키워가는 것보다는 친구 간에 우정을 지켜나가는 일과 더 닮아있다. 오래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온 터라, 부부간의 사랑이나 신뢰는 '의리'와 비슷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아내는 이 말을 적잖이 싫어했다. 가장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 부부 사이를 흔하디 흔한 것으로 격하시키는 것 같아 보여서였을 것이다. 
 
연애 때는 통화를 시작하면 7~8시간을 넘기기 일쑤라, 무려 구십 몇 년도에 통화료가 십수만원을 넘는 일일 부지기수였다. 그 긴 시간을 거쳐, 처음 사랑 고백을 했을 때, 아내도 나도약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로 며칠을 살아가야 했다. 다음 날 수업이 많았던 아내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교수님을 바라볼 뿐, 수업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 특별한 순간, 특별한 경험이 실은 세상에 흔하디 흔한 보편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사는 동안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하는 경우도 있고, 한 번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와 그 단계를 거쳐 사랑을 가꿔가는 도중에도 찾아온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속의 경험이 아닌 어떠한 단계를 통과하면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경험, 이제 막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와 난 생각지 않게 주말부부를 하게 되면서 결혼생활을 절반 정도는 서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어떤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며 부러워했다. 정작 나는,, 주말마다 지방을 오가는 고생은 차치하고서라도, 뭔가 찌그러진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이 있었다. 서로 눈을 바라보고 고민을 들어주고 따뜻이 안아줄 수 있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는 국토의 양 끝에서 떨어져 지내야 했다.
각자에게 무한히 주어진 그 자유시간들은, 내가 기혼자임을,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이 땅에서 함께 숨쉬고 있음을 끝없이 떠올리고 되새겨야만 하는 의식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시간임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래선지, 사랑이 식으면 미련없이 서로를 떠난다는 유럽인들의 말에 항상 의구심을 품어왔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상대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겨보고, 삐걱거리는 부분이 보이면 살뜰히 기름치며 가꿔나가는 것이 부부관의 기초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소중한 친구와 나 사이의 우정을 가꿔나가는 것과 매우 닮아 있다. 다른 점이라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들여야 하는 수고의 정도가 일반적인 친구사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점일 것이다. 
 
엄마 아빠로부터 받던 내리사랑과 다른 부분도 이 지점이다. 내가 좀 더 소홀해도 문제없이 이어져가는 관계와는 다르다. 사랑한다는 것과 필요하다는 것은 처음엔 반댓말에 가깝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같은 말이 되어 간다. 서로를 향햔 진지한 배려와 노력을 기초로 하는 관계는 모두가 그렇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부모가 된 내가 자식에게 주는 내리 사랑이 이런 자발적 돌봄과 가꿈을 바탕으로 하는 부부간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며, 자신의 삶을 선택해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이나 환상을 쫓다 보면, 그런 책임을 운명의 손에 내 맡기게 된다.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라면, 정말 처음 중의 처음에 겪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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